2019 년도 봄에 냉장고 문을 열다가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다.
이 때 쓰러졌을 때의 당시는 기억이 안난다.
갑작스러운 어지러운 증상. 내 몸을 못 가눌 정도의 극강의 어지러움.
그리고 구토감. 롤러코스터는 한 10번은 탄 것 같은 느낌.
심장은 빨라지고, 팔과 목, 어깨, 손이 엄청 저리고.
한참을 그렇게 세탁기와 냉장고 사이에서 쓰러져서 일어나질 못했었다.
일어나고 나니까 냉장고는 한참이나 열려있었고, 내 팔과 머리, 팔꿈치, 발목은 상처를 입어서 피가 났었다.
나는 그것을 치료할 엄두도 못내고, 제대로 서지 못한 채 벌벌 떨면서 냉장고 문을 닫고
겨우, 침대에 가서 누웠다.
약을 먹을 수도 없었고, 서 있을 수도 없었었다.
나는 그 때 당시 학교에 가기를 어려워했다. 그룹 프로젝트가 필수였던 반이였는데,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가 그 때 부터 힘들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원래도, 조금은 내성적인 사람이였지만. 심각할 정도도 아니였다.
미국에 와서 인종차별을 자주 받아, 무서움과 공포감이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좋은 사람이 있었으면 언제나 다가갔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하는 사람이였다.
하지만, 2019년도에 한 번 크게 제정신이 아닌 사건들을 겪고 난 뒤로, 음식을 먹기가 힘들었다.
학교는 다녀야했고, 해서 나갔는데. 사람들이 많은 클래스룸을 가니까 몸이 덜덜 떨려왔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려고 하니까 입이 죽어도 떨어지지 않았고, 등과 손에서 땀이 많이 났던 기억이 났다.
밥도 잘 먹지를 못했다. 11kg가 다 빠지고. 물 만 먹어도 토악질을 해댔었다. 피가 나오기도 했다.
이대로 가다는 죽을 것 같아서, 억지로 과자를 물고 턱을 눌러 씹기를 스스로 강요하다가,
그것도 다 토하고, 밖에 마당에 나가서 무릎꿇고 하늘을 쳐다보며, 미친듯이 울며
이대로 죽는 거냐고, 이렇게 죽는거냐고 원망하기도 했다. 이렇게 살기 싫어요, 하면서.
이불 속 안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물도 못 마시고, 음식도 못 먹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저 눈에서는 눈물만 나오고
내가 한 모든 노력들과 사랑과 의지들이 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느낌이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지? 최선을 다해서 살았을 뿐인데.
정말로 죽으라는 세상의 소리인가? 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마지막 주어진 선택이 죽는 것인가.
나는 그 때 당시 차가 없었다. 그리고 혼자였다. 아무것도 의지할 곳도, 의존할 수도 없고
병원조차 가지 못했다. 내 몸에 무엇인가가 이상이 생긴 것 같지만,
영주권 문제로 나는 한국에 가지 못하는 몸이였다.
2020년도 코비드가 터지고 나서, 여러 일이 터졌을 때.
다시금 어지러운 증상은 일어났긴 했지만, 다행히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2021년도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 끝자락.
그 증상이 다시 일어났었다.
극강의 어지러움.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데,
내 두 발로 서 있기도 어려운 상태. 팔이랑 목 어깨가 심각하게 저리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며.
몇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서 어지러움을 호소해야 했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쓰러질 때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난, 얼마 전 이것이 공황장애/ 불안장애의 큰 증상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았다.
작년 12월 말, 정신과 교수님과 통화로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심각하게 아팠던 점.
내가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히 위험한 상태였다는 점.
치료가 필요한 부분이 많았다는 점.
혼자서 잘 버텨줘서 고맙고,
살아있어줘서 고맙고. 치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여전히 있어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새벽 2시에 혼자 나가 이 악물고 10km를 엉엉 울며 밖에서 걸었었다.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내가 아팠음에도, 괴롭고 힘들었는데도.
그럼에도 잘 버텨줘서 고마워. 결국엔, 잘 버티고 살아줘서 고마워. 라는 말을 들었을 땐
그 어떤 약도 필요없었다. 구원받은 느낌이였다.
우리 모두가 이 치열하고 각박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살아남으려고, 살기 위해서.
그러다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나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기도 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정말로 고통 그 자체 아닐까.
그렇지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It is okay, not to be okay 왜냐면, 우리 다 처음이잖아요. 이 삶이.
쉽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수업도 없는 텅 빈 클래스에 가서 앉아서
심호흡을 하고, 혼자서 막 말하는 연습도 했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두 손 모아 잡고, 나오지도 않은 목소리를 억지로 내어가며.
후드 안에는 땀으로 흠뻑 젖었고, 남이 나에게 말을 거는 상상을 하면서.
머릿 속으로 이런 저런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노력했다. 말이 제대로 안 나와서 괴로웠고.
빠지는 날도 많았지만.
조금은 쉬었다가도 되지만,
조금의 노력을 해서라도 반드시 나는 나아질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노력들과 투쟁이 있었다.
돌아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정리하는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짐을 싸면서, 공황장애가 와서 툭하면 정신을 잃고 쓰러졌었다.
발작 같은 증세가 왔었던 것도 같고, 온 몸이 부들부들 쥐나 나면서 쓰러지기도 했다.
숨을 쉬기가 어렵고, 어지러운 증상이 강렬해서 토할 수만 있다면 다 토해내고 싶었다.
짐을 싸면서, 가만히 있으면서, 학교에 가려고 버스 타면서,
지하철 역을 가면서. 자주 느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살고 싶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건강하게 먹으려 노력했고, 건강하게 운동하려고 노력했다.
땀을 흘렸고, 그 땀들을 흘려 내 몸을 개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적어나아갔다. 모든 것들을.
생각하는 것들을, 혹은 말해야 하는 것들을.
과거들을 복기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적었다.
나에게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는 강의들을 열심히 찾아서 매일 들었다.
특히 김창옥 교수의 강의가 나를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강의와, 에세이들을 정독했다.
용기를 얻고 싶을 때는, 용기를 내뱉는 사람의 말을..
웃고 싶을 때는 무한도전이나, 시간탐험대, 내가 좋아하는 예능을..만화를.
마음이 많이 힘들 때는 나가서 몇 키로씩 걸으며, 아파하는 나를 꼭 안아주는 시간을 가졌다.
아팠지? 많이 힘들었지. 이리와. 내가 내 자신을 참 안아주지도 못하고 살았다. 하면서.
먹은 것이 없고 다 토한 날에는, 그냥 밖에 나가서 걸었다. 두 시간 내내, 봄 내음을 잔뜩 맡으며.
그리고 머릿 속을 두 시간 내내 정리했다. 나의 과거들, 현재들.. 이런 것들을 복기 하고,
깨닫는 것들이 많아지고, 바둑의 돌들을 다시 하나하나 두었더니, 참 서툴렀고, 모자랐고.
어렸고, 그랬다.
그러더니, 나의 아픔보다. 상대의 아픔이 더 아파보이고. 안쓰러워보이는 힘까지 지니게 되었다.
내가 죽을 만큼 힘들고 아파도,
남의 아픔이 더 나에게 아프고, 더 괴로울 수 있겠다 싶었다.
내 안의 독을 퍼지게 하는 것을 멈추게 했더니, 그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을 용서하고, 보듬어주려고 하는 용기. 이해하려고 하는 큰 용기.
우리 모두가 서툴렀고, 잘못했지만.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더 많이 아프다, 이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가족과의 관계도,
내가 가진 것들도. 주위를 둘러 볼 수 있었다.
가끔 오락가락 하지만,상처를 주기도 하지만서도, 또 끝까지 나라는 사람을 놓치지 않고 사랑해주는 엄마.
"언제든 돌아올 곳은 여기니 걱정하지마라.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 돌아와" 라고 나의 뿌리를 알려주는 아빠.
내 걱정은 많고, 언제나 근심많지만 나에게 항상 먼저 양보하고 생각하는 나의 호적메이트 (웃음) 오빠.
내가 살아온 환경을 난생 처음으로 생각해보고, 내다보았다.
내가 가진 것들, 내가 누렸던 것들,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 곁에서 끝까지 포기해주지 않았던 사랑들.
이 때, 정말 내 상태가 좋아졌었다.
그렇게 깨달았던 값진 소중한 순간. 그 봄.
너무나 기적같았다. 너무나 반짝였고, 너무나 좋은 사람이 다가와주었다.
두 번 다시 태어나서 사랑따윈 못할 줄 알았는데.
정말로 사람이 깊게, 사랑하는 것이 가능했던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었다.
무엇에 감동하고, 무엇에 울고, 무엇에 환호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이 살면서일치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사람과 나는 소울메이트였다. 생각해보면, 서투르기 그지 없었다. 많이 사랑하고. 사랑이 넘쳐서 특히나 더 서투르지 않았나 싶다.[적당한 것이 좋아] 라고 말했지만, 사람에 대한 감정이나 생각은 적당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참, 많이 사랑했지만. 서로가 가진 상황이나 상처를 이해하기에는 사실 조금 서투르지 않았나 싶다.왜냐하면, 평상시에는 정말로 든든한 동반자였었으니까. 서로가 내 편이였고, 동반자였고, 매일 같이 행복했었다.그치만 참, 나도 그 사람도 서툴렀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가진 문제들을 다시금 보니까, 내가 아프기도 했고. 역으로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많이 무서워하고, 언제 버려질까 하는 두려움이 점점 더 많아졌던 것 같다. 아직도 기억난다. 한 때 그 사람과 크게 싸우고 서로 각자 상처 받았던 날이 있었다. 그 때 그 사람 집 아침, 침대에서 고요하게 서로 눈 뜨며 누워서 마주보며 이야기 나누었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르고, 행복한 추억과 사랑하는 추억으로 살다가.
또 힘든 일이 닥쳐 서로가 상처입고 나서도.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런 말도 했었다.
하지만 또 이렇게 사랑은 끝이 났다.
내가 많이 아프기도 했고, 내가 많이 괴롭기도 했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고 모잘랐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참 안 맞았던 거야]의 결론이 아니다.
그저, 내가 참 많이 아팠고, 괴로웠고. 힘들고 괴로우면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거나
혹은 상대방에게 mayday를 외치기도 해야하는데. 그러질 못했었다.
서로가 안정기에 접어들어, 상대방의 특성과 특징들을 이해하고
서로의 중간 합의점을 찾아나아가는 그 과정을 서로가 해보지도 못했다.
항상 많이 보고 싶었고, 많이 그리워 했었으니까. 그 만큼 사랑했었으니까.
처음엔 이별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찾은 기적같은 사람인데. 세상에 이 우주에 나와 연결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해주길, 매일 빌며 간절히 기도하고.
정말로 더 나은 사람으로 되려고 노력하는 그 여정길에 만난 소중한 사람이였다.
분명, 그 몇 일 전 만해도. 방금 얼굴 보고 헤어졌는데도, 공부하는 도중에도 보고싶은 그리움이 가득차서
하염없이 전화만 기다렸던 나날들이였는데.
내 안에 퍼진 독을 제거하는 것들을 제거하려면, 내가 어디가 아팠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했다. 나는 다시 상담을 한 번 받았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심각하게 아팠고,
어느정도 였는지 알 수 있었다.
나의 불안의 근원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이유들을 열거 했다.
그리고 2년동안, 나에게 일어났던 일 들중, 가장 힘들었고 괴로웠던 때를 떠올리며.
내가 나를 위로 해주었나 더듬었다.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적어 나아가기 시작했고,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의 모든 것을 용서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무엇이 필요하고, 나에게 필요한 자세는 어떤 것인지.
잊고 있었던 것들은 무엇인지 까먹지 않으려고, 매일 같이 적고, 적고, 적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차차, 나의 독을 제거해 나아갔다. 나의 독을.
내 공포를, 내 불안을. 그러다 보니. 나는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구나를 느끼기도 했고.
또 다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좋은 말들이 가득 담긴, 용기를 나눔 받을 수 있는 강의를 매일 보았고,
자기 전에 명상을 했다.
좋은 글들이 있는 글에 밑줄을 치고, 외우기도 했으며. 나가서 매일 같이 뛰기도 했다.
포기하지마. 힘들어도 포기만 하지만 마. 괜찮아. 하며.
내 안의 독을 차차 제거하다 보니, 내가 참 아직도 성장을 더 필요한 사람인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도 참 많이 아팠지만, 상대가 얼마나 아팠을지 생각하니. 내 마음이 저려오고,
괴로웠다. 하지만 피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마주봐야 하는 것들이니까.
김소년, 기억하는가?
내가 나의 독을 제거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항상 까먹으면 안되는 것 같다.
슬기롭게, 지혜롭게, 현명하게 이겨내고 극복해 내는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지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도 너무나 멋진 일이라는 것도.
삶이 나에게 할 말이 있어서, 이런 일. 저런 일들이 일어났겠지 싶다.
다시금, 나는 성장할 수 있고, 또 건강해질 수 있고,
또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다.
또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뼛속 깊히 새길 수 있고,
삶의 독, 사람의 독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계기가 또 주어졌고..
여기서 더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더 큰 사랑으로, 더 좋은 사람으로, 더 나아진 사람으로 나는 성장하고 있다.
더 큰 가치, 더 큰 의미, 사랑, 행복으로 또 오리라 믿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서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시스템이 눈에 보이더라.
그냥 아무렇게나 막 나눠주는 건줄 알았는데, 아이가 있는 집안, 갓난 아이가 있는 집안, 노령층, 그리고 여자 아이, 남자 아이 이런 식으로 가족 구성원에 따라 음식의 영양소를 골고루 섞어 준다.
Underweight? 저체중? 인 아이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가족에게는 반드시 프로틴 파우더나, 프로틴 함량이 많이 들어간 드라이 푸드, 캔을 챙겨준다.
그리고 갓난 아이들을 위한, 분유. 간식, Food for babies 라고 해야하나. (한국말 안 나옴) 이런 것들도 다 분류해야 한다.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이 음식 기부를 하고 간다.
이야기 들어보니, Fairfax county 자체가 게토도 별로 없고,
다들 middle working class 들이라 오가닉 제품들도 많이 기부한다고 한다.
실제로, 음식들 정리하다보면 오가닉, 홀푸드 제품이 많아서 엄청 놀랬음.
처음 봉사활동 시작했었을 때는,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과 고마움을 깊게 느끼게 할 수 있는 일이여서 좋았다.
내가 건강한 몸을 가진 것,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 음식 걱정없이 있을 수 있는 것 등등..
하지만, 점차 하면서 간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것이였다.
오늘은 저녁 밥을 먹고 한 참을 뛰다가, 걷다가 하며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나의 이 삶의 고통 속에, 내가 간간히 힘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희망을 놓치않고, 아직도 이 삶에 있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를 응원해주고, 나를 바라봐 주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였다고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나란 사람이 과연 그런 자격이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 걷는 내내 슬프기도 했다.
내가 과연,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그런 자격이 되는 사람이던 아니던,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곁에서 계속 응원해주고,
슬프면 같이 울어주고,
기쁘면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희망이 하나 없이, 그냥 마냥 힘든 아이들에게..
힘들지? 희망이라는 불꽃은 혼자만 계속 피우기 힘든 일이야. 그 희망이 꺼지지 않도록 곁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야, 계속 그 불을 피울 수 있는거야. 잘 견뎌내어 보자.
그리고 네가 배운 따뜻함을 또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자.
라고 말해줄 수 있는, 위로해 줄 수 있는,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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