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라고 들어보았는가. 유토피아라는 말을 최초로 쓴건 토마스 모어라는 영국사람인데, 이혼 사건으로 유명한 헨리 8세 당시의 대법관이라고 한다. 유토피아라는 건 인간이 꿈꾸는 사회 중,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뜻하는 건데 (유토피아도 사실 세 종류로 분류되고, 유토피아 자체의 본뜨(本)가 되는 건 사실 코케인이라고 껄껄), 내가 말하고자 하는건 유토피아니 디스토피아에 대한 definition 을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고.
나라는 사람은, 나를 꽤나, 아주, 아주 많이 아끼는 사람인 것 같다.
물론 이 자기애가 강한 성향이 안 좋을 때도 있는데 :
- 가령, 어떠한 실수가 일어나거나, 내가 잘못을 하더라도 쉽사리 인정하기가 시간이 걸리거나 회피한다. (이건 이제 아예 사라짐. 사라진지 꽤 된거 같음. 28-9살 정도에? 시발 빠르기도 하지. 내가 잘못한 거 인정 잘 하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함.
특히 이 아래것을 안하게 됌.
애초에 나는 아니, 라고 말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다. 아니, (ㅋㅋㅋ) 이게 인생을 겪다보니까 깨닫게 된 건데.
내가 한 행동이 남에게 상처주려고 한 행동도 아니고, 마음 아프게 하거나 섭섭하게 한 행동은 절대 아닌데, 상대방이 서운하거나 섭섭해 할 수도 있다는 상황도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그럴 때는,
[ 난 잘못한 게 없어, 사실 내 행동은 그게 아니였는데?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먼저 네가 받아들여야 해. 나에게 섭섭해 하지도 마. 서운해 하지도 마. 내가 그러자고 한 행동도 아닌데, 내가 왜 니 기분에 엉켜야 하는데?]
라고 할 때 보통, "아니" 를 먼저 사용하게 되더라. 근데, 이게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더라구. 일단, 상대방이 서운하다거나 섭섭하다면, 이유가 어찌되었던 간에 미안하다고 먼저 말할 것. 그 다음에, "아니"라는 연결사 보다, "사실은"/ "나의 진심은"/ "내가 너에게 받아들여지자고 한 의미는" 으로 시작해서 차근차근 오해를 풀어나가는게, 그게 상대방도 "미안" 을 듣고 엉킨 기분과 꼬인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는거지. 아니, 라고 하면 일단 부정으로 시작해서, 상대방이 지금 겪고 있는,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아무리 내 본심이 그게 아니였다고 한들. 상대방이 그렇다고 하는데 내가 먼저 달려 들어 부정하는 꼴이 되는게 아닌가. 이걸 좀 자주 겪었는데(내가 한 건 아니고.), 겪고 나니까 이건 진짜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오히려 안 하려고 몸에 배었다고나 할까. 대화의 기술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고. (근데 대화의 기술도 답 없는 년 놈들이랑 있으면 기술 따위 안 먹혀. 무논리가 답이거든 그 사람들은.)
- 자존심 상처 받을 까봐, 미리 사람들 다 차단. 관심이 나에게 있는 사람이던, 없는 사람이던 쉽게 사람 관계를 포기. 멀리서 관찰하고 유유히 떠나감. 혹은, 관심이 나한테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 없다는 거 알면 자신감 하락, 자존감 하락하니까 쉽게 포기. (이것도 많이 고쳐짐. 20대 초반엔 진짜 포기매니아여서 놓친 인연이 꽤 되었다. 후회 졸라 하고 있음. 그래도 나 끝까지 잡아준 사람들에게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움. 그 보답을 어찌 다하리. 그 고마움과 감사함을 잊지 않으며 더 잘해줘야지.)
- 자기애가 가끔 너무 강하면, 내가 남들 보다 못하다는 자격지심이 하늘을 찌를 때가 있다. 사실 남들보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냥 다른 걸 수도 있는데, 나의 집안 환경과 나의 자라왔던 배경들까지 몽땅 총 동원되어서 쓰나미 1,2,3호가 발생된다. 마음의 지진 발생 경보. 이딴 거 울리는 거지.
아니 근데, 다른 사람들은 사랑도 적당한 게 좋다고들 하는데, 나는 넘쳐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 뭐 어때? 넘쳐난다고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뭐든 부족한거 보단 낫잖아. 헌데, 그것이 건강하게 넘쳐 난다면 이란 전제가 붙어야지. 왜, 마음이 넘쳐나서 흐르는 게 낫지, 부족해서 종지그릇에 가둬두는 것 보다 낫잖아.
무여튼, 사설이 아귀 혓바닥 만큼 길었는데. 나는 나를 부단히도 아끼는 사람인지라, 담배와 술이나 마약은 하지 않는다. 해보려고는 시도 해 보았으나, 나랑 안 맞음. 기본 적으로 담배를 필 때, 목이 따갑고, 냄새가 내 두피나 옷에 베어지는게 그토록 혐오스러울 수가 없다. 아프면 아픈대로 괴롭고, 돈도 많이 깨져서 골치가 하늘 만큼 아플 텐데. 가만히, 건강하게 살아서 암이나 병을 예방하는 것도 힘든데 굳이? 라는 생각이. 술도 마찬가지.
심적으로 괴롭거나, 머리 속이 복잡해 터질 것 같고, 가끔 누군가가 너무 밉거나, 내 인생이 보잘 것 없거나, 인생이 좆같을 때, 그냥 나는 운동을 선택했다. 즉, 몸을 부단히,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을 택했다.
이 운동의 효과가 진짜 엄청난게. 몸을 움직임으로써, 내가 머리 속에 가지고 있던 복잡함들을 잠깐 잊혀지게 해준다. 정리가 안된 모든 것들을 잠깐 pause 시키고, 정리를 할 수 있게끔 도움을 줄 수 있게 건강한 에너지를 준다. 그리고 땀을 흘리면 개운해진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끝나면 정말 기분이 좋다. 나는 일본 유학을 포기 하게 되었을 때도, 너덜너덜한 마음과 육덕지고 기름진 몸으로 수영을 끊었다. 월화수목금, 밤 8시부터 9시까지 수영 초급반을 시작해서, 5개월만에 마스터 반까지 찍었다. (수영 선생이 나보고 체대생이냐고..) 토, 일도 자유수영을 나가서 혼자서 2시간씩 인터벌로 수영하고, 매일 자세 교정을 혼자서 잡았다. 수영을 더 잘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겨,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하고, 수영을 하지 못하는 대자연이 오는 날에는, 양재천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어느 날에는 여의도 까지 갔다가. 종합운동장 까지 갔다가. 자전거가 고장이 나면, 걸었다. 10키로, 15키로를 그렇게.
스트레스와 마음의 병을 부단하게 조절하기 위해서, 아무리 잠을 못자고 피곤해도 나는 운동을 했다. 회사에서 야근하고 퇴근길까지 막혀 밤 9시에 집에 도착해도, 나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과천 서울 대공원을 가서 한 시간-두시간은 꼭 걷고 폭풍 샤워 하고 잠을 청했다.
이 때 당시는 정말 살이 많이 빠졌었는데. 올 3월부터,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시 운동하기 시작했다. 진짜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는 걸까? 담배도 펴보았고, 술도 마셔보고 했는데. 목 따갑고, 달릴 때 숨이 거칠게 쉬어지는 모든 것들을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도저히 못하겠더라. 술도 마찬가지고. 액체로 배 채울바에 나는 밥 한공기를 더 먹겠어. 치킨이나. 약간 기분 좋은 알딸딸함도 좋아하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좋기는 하다만, 그게 내 집이나 친구 집에서 편안하게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지 굳이 밖에서 그러고 다니고 싶지도 않다. 스스로 살짝 풀어지고, 목소리도 높아지고, 내가 내 스스로 컨트롤이 안되고, 살짝 업된 기분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취향이니 존중해주세요, 라고 하면 상관은 없지만, 자기 스스로 컨트롤이 안되는 상태에서, 목소리 커지고, 입은 걸레 물은 것 처럼 욕해대고, 마신 다음 날 머리 아프고,아니 이러면 스트레스가 풀려?? 정말 미스테리다. 역시 술은 치킨 먹을 때 500cc 딱 한 잔, 혹은 와인 한 잔 정도가 적당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혹은 내가 술도 안 마신채로 취한 것처럼 다니는 미친년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열심히 걷다 보니, 1000키로가 코앞. 이거 나름 기분 되게 뿌듯하다. 근데 살도 그 만큼 빠지면 좋은데 안 빠지니까 뿌듯함이 2분 가더라 정확히. 그래도 담배, 술, 대마 빠는 거 보다 나으니까. 아프면 스트레스 받는데, 오히려 건강하게 스트레스 푸는게 더 낫지 않나 싶다.
근데 우리 동네에 왜이리 동물이 많은건지, 진짜 뜀박질 할 때 조심해야 하는게 자라니(자전거+고라니) 가 아니라 진짜 사슴, 고라니더라. 예전에, 비가 오더라도 밤 8시에 나가서 8키로 정도 뛴 적 있었는데, 사슴 무리가 코앞에.. 진짜 사고나는 줄 알았다. 이상한 변태나, 사람 조심하는게 나은건지, 이게 나은건지 비교가 안되는 요즘이다.
그래도, 공기 맑은 곳에서 미세 먼지 걱정 없이 언제든 나가서 뛰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축복받은 일이 아닐까 싶다. 이 미국 땅은 정말 지독하게 고독하고 외로워도, 가끔씩 나에게 여기 있어도 괜찮지 않아 나름? 하고 좋은 점을 툭툭 던져주는 것 같다.
파스텔 톤의 하늘도, 저 멀리 지평선 까지 보이는 광월한 시야도, 하늘의 떠다니는 미국 사이즈 처럼 큰 구름도, 여름 밤이면 넘쳐나는 반딧불들도, 꽤나 내가 좋아하는 풍경을 지니고 있어서. 미국 생활을 꽤 하다보니, 나중에 한국 가면, 서울 말고 그렇게 귀농하고 싶더라.
그래도 나는 동물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 멀리서 보기만 해도 행복하더라. 운동하는데 토순이, 토남이들 안 보이면 그렇게 섭섭하고 그립더라. 여름인지라 그런가, 아이들이 저녁 시간대에 나와 부지런히 풀 뜯어 먹는다. 사슴도 마찬가지고. 너구리, 여우도 분주하게 움직이며 먹이를 찾는다. 퇴근 시간대에 그 수많은 차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그것들을 뚫고 다니는 모습들이 정말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곤 한다. 더불어서 같이 사는 사회인데, 너희한테도 팍팍하다 그치? 주토피아가 생길 일은 없겠지만, 너희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없을까 하며 오늘도 나가서 뛰어보고,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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