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늦은 새벽 자기 전에 누구나 다 그렇듯이 하는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고등학교 동창애들의 인스타그램을 타고 타고 흘러가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나랑 같은 학교에, 같은 반을 다녔던 여자 아이들이 ( 참고로 여고 다녔음 ) 하나 둘씩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해서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정신이 멍-해지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결혼도, 출산도 안하고 (못하고) 있는 나는, 루저 인걸까? 내 나이가 지금, 아, 이러고 있을 나이인가? 나는 출산도 생각도 못하고, 꿈도 못 꿀 정도로 아직 먼 길인 것 같은데. 자식을 낳지 못하면 어떡하지? 나는 정도 많고 사랑도 너무 많아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똑닮은 아이를 낳고 사랑을 듬뿍 줄 자신이 있는데, 내 일생에서 그 경험을 못하고 살면, 훗날 미래에 나는 과연 옳은 선택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나만, 다르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늦쳐진 걸까? 평범하게 살지 못하고 있는 걸까?
문득, 너무나 불안해 져서 친구들에게 갑자기 카톡으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사실 내 주위의 친한 친구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는 여자 애들이 훨씬 더 많았고, 나는 그 애들도 나와 똑같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굉장히 궁금해졌다. 사실, 나 처럼 불안해 하는 사람을 찾고 위로 받고 싶은건지, 아니면 덜 불안해 하는 사람으로 인해, 나도 불안해지고 싶지 않은 동질감의 영향을 좀 받고 싶어서 그랬던 건지.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국에서 자란 기간이 해외에서 지낸 기간이랑 거의 마음 먹는다. 나의 가치관이나 관습, 신념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랄 때 형성 된 것이 많으며, 우리 가족 중 엄마는 시골에서 태어나 아주 보수적인 편은 아니지만 서도, 남들이 하는 것들을 그냥 자연스럽게 나와 오빠도 하길 바라면서 키웠던 것 같다. 그것이 가령 예를 들자면, 학교에서 점수를 잘 받아오고, 명문 대학교를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하지만, 우리 엄마와 아빠는 불행하게도 자신의 딸이 이렇게 통통 고무볼 같이 튀기며 평범한 것은 저리 갖다 치워 버려 겟떠퍽아웃오브히어!!!! 라며 자라올 줄 누가 알았을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 나이가 사실, 지금 보면 조선시대도 아니고, 고작 30 넘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치명타인가? 간혹가다, 살다보니,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할 때가 많이 느껴질 때도 있긴 하다만 (특히 젊은 애들 만날 때) 출산과 결혼에 대해 이렇게 불안해 하고 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루저 기분을 느껴야 한다니.
아무리 책을 읽고 스스로 번뇌이면 뭘해? 결국은 이렇게 휘둘릴 꺼면서. 등신 김소연. 하며 이불을 걷어 치우고 기분 전환겸 이불을 깨끗하게 털고 침대보를 돌돌이로 먼지를 치웠다.
내심, 내가 한국에 없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속도가 정해져 있기 마련이라, 내가 굼벵이의 속도로 가는 걸 수도 있고, 남들은 끝내주는 아이템 덕에 빨리 가는 걸 수도 있지 않나. 내가 앞으로 잘 걸어가고, 내 인생에 내가 만족하는게 중요하지 남 인생이 뭐가 그리 중요한데? 라고 막상 생각하며 살아도, 동창 애들이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에 그렇게 불안해 질 수가 없더라. 심지어 나는 혼자 아닌가. 이러다가, 좋은 사람 만날 기회도 줄어드는거 아닌가? 세상엔 이쁘고 잘나고 몸매 쩌는 여자들이 그렇게 많은데, 내가 무슨 매력이 있다고 나를 만나줄까. 하며 우울과 자신감 하락에 하루를 우울하게 보내게 될거 같아서 나가서 또 폐 터질때까지 뜀박질.
가끔, 하루 종일 유투브만 볼 때도 있는데, 뭔 놈의 여자들은 성형도 해야하고, 내 주위에 있는 애들은 보톡스나 필러를 안 맞는 애들은 찾아보기가 힘들며, 꾸미기에 한참이나 바쁘다. 일단 외형적으로도 다들 비슷하게 생겨지는 것 같으며, 어떠한 아이템이 유명해진다면, 그것들을 길거리에서 정말 쉽게, 그리고 아주 대량으로 그 아이템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남들도 하면 나도 해야지 하는 동조행동의 끝장판인 우리나라에서, 사실 남들도 하니까, 나라고 안 할수 없지 하는 그 사회심리는 함부로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너무 과열되면 당연히 문제겠지만. 왜, 인스타그램이나, 다른 소셜 미디어 같은 플랫폼에도 보면, 남들이 간 곳은 다 태그해서 올려야하고, 남들이 한 것, 본 것은 무조건 나도 같이 올려야 중요한거지, 그 곳에서의 의미, 시간, 이런 건 딱히 중요해 지지 않으니까. 요즘 시대가 그러하다.
그러다 보니, 나라고 뭐 별 수 있어?
태어나서, 피부과니, 보톡스니, 필러니, 뭐 개인 PT는 물론이고, 성형도 해 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불안 해지고 짜증이 나겠나 싶다. 아니, 인스타그램엔 왜 이렇게 미인들이 많아? 물론 너무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도 많긴 하다만, 쉬펄 이건 무슨 삼천궁녀도 아니고 뭐야 대체?
나의 불안감과 루저 마인드는 식을 줄을 모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책과 운동으로도 해결이 안 날것 같은데 어떡하지?
나는 점점 머리도 많이 빠지고, 피부도 축 쳐질거고, 살은 콜라겐이 다 빠져나가 흐물흐물 해질꺼고, 아이는 낳기 힘들어 질꺼고, 나는 점점 못나질 건데.
그러다 문득, 아주 우연한 계기로 이 모든게 해결되는 날이 생겼었다.
내가 운동할 때 듣는 플레이리스트들은 참으로 다양해서 뭐 하나 특정적으로 듣는 분야가 없다. 일본 80년대 엔카서부터 팝, 일렉, 얼터네이티브락, 락, 가요, 인디, 힙합, 뮤지컬, 영화 혹은 게임 ost등등. 이 플레이 리스트들이 나의 개성을 대표하는 것 같아서 살짝 "나" 라는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가, 다시금 보이는 기분이였달까.
선곡 플레이 리스트들 뿐만 아니라, 나라는 정체성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는 남들보다 정말 특징적인 부분들이 다양하게 톡톡 튀기는 맛이 강한 여자다. 보드게임을 좋아하고 (보드게임 까페에 가서 같이 게임하는 게 제일 좋다. 클루라던가, 티켓 투 라이드, 판데믹 같은거 하면 세상 모르고 하루 끝낼 수 있음), 게임을 좋아하고 (FPS 제외), 비디오 게임에 열광하며,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오래된 책 냄새를 좋아하며, 도서관을 좋아하고, 깔끔하고 정돈된 침대의 섬유냄새를 사랑한다 던가, 사랑을 받는 것도 좋아하는 데, 스스로 사랑을 생산해서 남들에게 주는 걸 좋아해서 (그냥 정이 많은거) 가족을 사랑하고, 동물들을 보면 환장한다. 누워서 책 읽는 시간을 굉장히 즐기고 (없으면 큰일 남), 화장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 날에 맞춰 나를 돋보여 주는 립스틱과, 상쾌하고 깔끔한 자몽이나 레몬, 바다향, 바닐라 우드향을 가진 향수들을 사랑한다. 술을 마시는 것 보다, 까페에 앉아, 혹은 거실에 누워 도란 도란 쓸데없는 것들을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것을 인생의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에서 UMF나 워터밤 페스티벌, 워터파크 같은 곳을 간다면, 나는 국립공원에서 산책하거나 트래킹을 하는 것을 훨씬 더 사랑한다. 의외로 클래식을 사랑해서, 좋은 헤드셋으로 클래식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디지털도 사랑하지만, 가끔 아날로그가 주는 인간미 적인 부분을 사랑한다.
이렇게 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을 잔뜩 지니고 있는 나인데, 고작 출산과 결혼을 늦게한다고 불안해하다니, 너 너무 미련한거 아니니.
내 자신을 형성해내는 것들은 딱히 그 둘이 아니듯이.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한 평생 같이 있고 싶은 결혼은 크게 소망하고 있다만.
사실 내가 이뻐지지 않고, 출산과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로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남들은 다들 취직하거나 결혼해서 살 때 나는 아직도 공부를 해야하고, 학교를 졸업해야 하며, 늦은 나이에 무언가를 해나가는 것에, 빵바레를 울리고 크게 응원해야하며 축하해야 할 판에, 나는 뭐가 그리 남들과 다르다며 무섭고 두려워했던가. 나는 나인채로 그만인것을.
더군다나,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 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내가 다른 사람의 보톡스, 필러, 성형으로 이뻐지는 것은 그들의 각자 개인적인 욕망을 개인 적으로 채우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존감 떨어트리고, 자존심도 너덜너덜 해질 필요는 없지 않나. 나는 내가 30이상의 나이를 먹은 만큼, 그 동안 내 자아 형성이 좋은 점은 더욱 단단해지고, 안 좋은 점은 더 좋게 만들도록 흘러간 세월들이니까.
남들과 다르다는 게 틀린 것이 아니고, 내 길을 힘들어도, 가끔은 너덜너덜해지더라도, 상처들이 아파서 걷기가 힘들 더라도, 그래도 꾸준하게 포기 하지 않고 걸어 왔다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지,
내가 출산을 안했다고, 결혼을 안했다고, 취업을 하지 않고 늦은 나이에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부끄러워 할 일은 절대 아니니까.
5년 전부터 꾸준히 좋아했던 웹툰이 있는데,
그건 바로 네온비의 "결혼해도 똑같네" 라는 웹툰이다. 작가 현동과 네온비는 서로 제자 선생 관계인데 네온비가 살이 엄청 쪘을 때도 살을 뺄 수 있게 도와준 현동의 일화를 그린 다이어터도 재밌지만, 가장 보면서 마음이 훈훈하고 공감을 많이 얻었던 것은 결혼해도 똑같네 라는 만화다.
이 만화를 보면, 남편 현동이 아내 네온비를 정말 사랑하는게 느껴져서, 내가 다 결혼하고 싶게 만드는 만화이다.
내가 출산과 결혼을 지금 내 나이때에 하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게 중요하고 먼저가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과 삶을 공유하고, 든든하게 곁에서 같은 편이 되어주기도 하며, 때로는 아내였다가, 딸이 였다가, 친구였다가, 엄마가 되기도 했다가 하는 그런 세상에서 둘 도 없는 존재가 되어주고 때론,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역으로 되어주기도 하는 그런 관계를 살면서 먼저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하고 먼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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